한국의 스티브바이라 블리는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생애와 활동내역을 살펴보고 그의 연주스타일은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세황의 생애
한국의 음악가이자 기타리스트인 김세황은 클래식 기타 연주자였던 그의 어머니로부터 기타를 배웠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외교관이었고 그의 가족이 부유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여유로운 환경은 그가 기타에 몰두하기 위해 사용했던 '랙 이펙터'와 멀티이펙터와 같은 비싸고 고급스러운 장비를 소유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김세황은 학창 시절 유희열과 지누를 알게 되었고, 지역 여학교 축제에서 기타리스트로 자주 함께 활동했습니다. 당시 유희열도 기타리스트였고 그때는 작곡가는 아니었습니다. 유희열에 따르면 김세황은 잘생긴 외모 때문에 세 사람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김세황의 목소리는 말할 때 여성적인 톤이 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91년, 김세황은 밴드 DOWNSTOWN을 결성하고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랙 이펙트의 사용을 통합하여 그의 독특한 사운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2015년부터 오렌지 앰프와 BOSS 'ME-80' 또는 'GT-100'을 방송 활동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인이벤트와 녹음에는 랙 이펙터를 사용했지만 2014년 BOSS 아티스트가 된 후 'ME-80'과 'GT-100' 멀티 이펙터 사용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는 또한 무대의 중요성에 따라 다른 페달 보드를 사용했는데, 세션과 공연을 위해 큰 페달 보드와 작은 페달 보드를 사용했습니다. 1994년 김세황은 이전 기타리스트가 탈퇴한 후 밴드 넥스트에 정식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활동내역
1991년에 다운타운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4년, 그는 BOSS 아티스트가 되었고, 1994년 기타리스트이자 메탈 마니아였던 신해철과 함께 밴드 넥스트의 공식 멤버가 되었습니다. 신해철의 빠른 기타 스타일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김세황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기타 연주는 그를 밴드에 완벽하게 어울리게 만들었습니다. 넥스트의 멤버로서 김세황의 음악적 고집과 재능은 신해철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1997년, 김세황은 스티브 바이와 함께 한국에서 "Answer"라는 곡을 공연했고, 이것은 그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넥스트는 그 해 말에 4번째 앨범을 발매한 후 해체를 선언했고, 그들의 마지막 공연은 1997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김세황은 넥스트와의 인연과 함께 조규찬의 4집 앨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앨범에 세션 뮤지션으로 참여해 트랙 '비둘기'에서 메탈 위주의 기타 연주를 보여줬습니다. 또한 인상적인 기타 실력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영화 '정글 스토리' OST에 기여했습니다. 1999년, 김세황은 밴드 '패닉'의 전 솔로리스트 김진표와 함께 넥스트의 나머지 멤버들, 베이시스트 김영석, 드러머 이수용과 함께 '노바 소닉'을 결성했습니다. 김세황은 2001년 트럼펫 연주자 이주한의 앨범 "10+1"에도 참여했습니다. 2003년, 노바 소닉은 4집 앨범 이후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고, 2004년 보컬리스트 이안과 함께 밴드 '2 Cells'을 결성해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2 Cells'의 활동 끝에 넥스트가 재창단되었고, 김세황이 6번째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넥스트는 멤버 교체를 거쳤지만 김세황은 변함없는 존재감을 유지했습니다. 2011년, 그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일렉기타 협주곡으로 편곡하고 서울시향으로 구성된 현악 앙상블로 녹음한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세계적인 관심을 얻었고, 이탈리아 비발디 실내 관현악단과 다른 유명한 음악가들과 함께 독주자로서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김세황은 조 린 터너, 스티브 바이, 스콧 헨더슨, 사이먼 필립스, 거스리 고반 등과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과의 협업과 공연으로 숙련되고 숙련된 기타리스트로서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연주스타일
한국의 스티브 바이라고 불립니다. 곡들이 너무 게리 무어 스타일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탄탄한 기본기 덕에 어지간한 곡도 편안하게 연주하며 테크닉을 많이 구사하는 편이며, 연주 시 겉멋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인터뷰에서도 본인이 기타를 폼나게 치며 그에 대한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게리 무어 추모 공연(기획과 연출 참여)이나 거스리 고반 내한 공연에서도 테리우스 같은 모습으로 멋진 연주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라이브 때 보면 꼭 한 번씩 기타를 이로 연주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속주 능력이 강점이나 손가락 부상으로 수술을 한 적이 있어 속주로만 이루어진 곡을 연달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노바소닉 시절 라이브 연주를 보면 객원 기타리스트를 섭외하긴 했었지만 그 공연에서의 기타 연주는 수술하고 붕대 푼 지 3달도 안 된 사람의 연주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빠른 속주는 스티브 바이랑 비슷하다는 평을 받는 기타리스트이지만 넥스트나 노바소닉 시절 연주를 보면 잉베이 맘스틴이 연상되는 엄청난 속주도 자주 선보였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기타 톤을 제대로 신경 쓴 기타리스트이기도 한데 비교적 방송 활동이 많던 노바소닉 시절에 방송에서 연주한 걸 보고 그의 음색을 스쿨 밴드 같다며 비판하기도 하였지만 그 상황은 전적으로 전적으로 방송사 잘못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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