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김도균의 생애와 그의 음악활동 및 방송활동 등에 서 드러난 인간미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타리스트 김도균의 생애
대구에서 성공적인 섬유회사를 운영하던 부자 집안의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도균은 천체물리학자의 꿈과 미술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평범한 자랐습니다. 중학교 시절, 그는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가 록 음악에 빠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음악에 대한 김도균의 관심은 공부는 소홀하게 되었고,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 기타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대구의 한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마침내 호평을 받은 록 밴드 '휠'을 결성하고, 백두산의 리더 유현상의 주목을 받으며 음악계에서 성공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2010년부터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한 김도균은 2011년 KBS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 Band Season 1'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한국 록 음악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또한 특히 한국 전통 음악과 헤비메탈의 융합을 통해 한국 전통 음악을 홍보하고 보존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습니다.
음악활동
그는 평소 국악과 메탈을 좋아해서 두 장르를 크로스오버한 음악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물로 1988년에 발매된 앨범인 'Center Of The Universe'가 나왔습니다. 이 앨범은 쾌지나 칭칭 나네라는 타이틀곡과 아리랑이라는 연주곡 등으로 음악적 진보를 보여주었지만, 녹음상태는 아주 좋지 못하였습니다. 이후에 김도균은 프로젝트 록 인 코리아에 참여하였고, 임재범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사랑(Sarang)이라는 밴드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메탈사운드에 현지의 반응이 좋지 않았고, 이에 김도균은 자신의 무기인 가야금 주법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의 연주는 이전과는 다른 상당한 반응을 받게 되면서 국악과 메탈의 크로스오버가 가능성이 있음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의 활동을 통해 세계무대를 꿈꾸게 된 김도균과 임재범은 귀국 후 새로운 밴드를 구성하였고, 아시아나라는 슈퍼밴드를 결성하였습니다. 이 밴드는 록 씬에 굉장한 화제를 몰고 왔으며, 멤버들이 모두 국가대표급의 실력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메탈이 끝물이던 시절이었고, 더구나 이들이 추구하던 음악스타일이 굉장히 올드하다고 여겨져 상업적으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레코드사 도산으로 인해 활동을 조차 해보지 못하고 종료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Yngwie Malmsteen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빠른 기타 솔로의 인기로 인해 연주기술은 주로 화려한 속주가 관련이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크 클래식음악과 메탈을 융합한 네오 클래시컬 메탈처럼 국악과 메탈을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실제로 산조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국악 곡을 일렉기타로 커버하기도 했습니다.
인간미
신장이 184-185cm의 큰 키에 파마머리 헤어스타일을 가진 다소 4차원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조용한 성격 때문에, 언뜻 보기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2011년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 출연했는데, 1994년식 현대 엑센트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동네 편의점에서 김치볶음밥을 먹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하였습니다. 생계를 위해 록을 하는 사람들도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는데, 방송은 록 뮤지션들이 삶이 힘겹다는 것으로 묘사하여 당사자를 다소 불편하게 했다는 평도 있습니다. 그는 JTBC 리얼리티 프로그램 '내 집 줄게, 새 집 가져와'에 게스트로 출연해 10년 넘게 살아온 집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먼지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모습은 충격적인 모습을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MBC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출연 조건으로 집 청소를 제안했지만, 김도균은 먼지가 마치 아름다운 눈송이 같다며 가구 밑으로 먼지를 살짝 밀어 넣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습니다. '음악 이외의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 하나의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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